세상 사는 이야기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가야 할까?
목우자
2022. 12. 17. 08:52
돈이 좀 필요하여 집 인근에 있는 금융기관을 찾아갔다.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손님이 거의 없었다. 바로 창구로 가려다가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창구 직원 두 명 중 한 사람은 고객과 상담 중이었고, 또 한 사람은 기계로 돈을 세면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고객을 먼저 응대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모습을 보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부 일은 고객이 없을 때 처리하고 고객을 먼저 상대하는 것이 서비스의 기본이 아니던가? 한참 기다리니 상담을 끝낸 창구 직원이 내 번호를 불러준다.
창구에 다가가서 대출받으러 왔다고 용건을 이야기하였다. 대출에 필요한 서류 작성이 시작되었는데, 맡겨둔 내 돈을 담보로 하는데도 작성해야 할 서류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또 이름과 서명이 어떻게 다른지 똑같은 이름을 계속해서 두 곳에 적으라고 한다. 나는 이런 일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가 아닌가? 차라리 돈 얼마 빌린다는 내용 적은 큼지막한 종이 옆에 대출자가 함께 있다는 사진 한창 찍어 놓으면 되지 않을까?
몇 달 전에 행정안전부에 이름과 서명 문제로 국민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이름을 인쇄하는 경우는 도장 대신에 서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름을 자필로 적는 그 자체가 서명인데 또 서명하라고 한다. ‘이런 것 좀 개선할 수 없는가?’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재심 청구까지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르려니’ 하면서 그냥 따라가면 될 텐데 내가 너무 별난 사람인가?
학교장으로 근무할 때 선생님들께 늘 강조하는 것이 있었다. “선생님들, 제발 일 더 많이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일은 지금보다 더 적게 하시고 지금 하시는 방법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지를 찾아보십시오.”하고 말씀을 드린다.
많은 사람이 현재 자신이 하는 방식을 잘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현재 방식이 최선의 방식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일 처리를 하려고 잘 시도하지 않는다. 본인이 그 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제까지 아무 탈 없이 사용해왔기 때문에 최소한도 이것 때문에 내가 문책당하거나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은 없다는 안전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나이가 이제 겨우 70을 넘겼는데 창구 직원은 나를 어르신이라고 부르면서 완전히 노인 대하듯이 한다. “돈 조금 쓰려는데 이렇게 시간이 걸리고 서류 작성이 너무 많지 않은가?” 하고 물으니 창구 직원 대답이 걸작이다. “어르신, 지금은 몇 건 되지 않습니다. 부동산 담보 대출받으려면 서류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요즈음 전화금융사기가 하도 많아서 쉽고 빨리 서류 작성을 하면 사기당하는 것을 방지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시간을 끌면서 힘들게 합니다”라고 한다.
늘 일상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가라’라는 속담은 잠시 잊고, 때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번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