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형과 내가 함께한 또 다른 일이 있다. 여름이면 아이스케키(ice cake의 비표준어 : 우유에 설탕, 팥, 달걀, 향료 따위를 섞어 액체로 만든 재료에 나무막대기를 꽂아서 얼린 얼음과자) 팔기, 겨울 저녁에는 찹쌀떡 팔기이다.
제빙공장에서 판매하는 얼음과자는 두 종류가 있었다. 한 가지는 아이스케키인데 요즈음 판매되고 있는 ‘비비빅’과 모양이 비슷하며 많은 사람이 즐겨 먹었다. 다른 한 가지는 아이스캔디인데 요즈음 판매되고 있는 엑설런트와 흡사하다. 한 개씩 종이 포장되어 있으며 그 당시 가격은 2원~3원 정도로 고급 제품에 해당한다. 물론 두 가지 모두 맛과 질은 요즈음 판매되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 형제가 판매한 것은 아이스케키인데 한 개에 1원으로 기억된다. 이것도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할인하여 2개에 1원씩 팔았는 것 같다. 오전에 제빙점에 가면 어깨에 멜 수 있는 나무통(내부에는 보온재가 들어있음)에 아이스케키를 담아준다. 후불제로 오후에 장사를 종료할 때 팔다가 남은 것은 반납하고 판매한 개수만큼 돈을 지불하면 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당시는 나라 전체가 가난했기 때문에 아이스케키를 판매하는 사람도 엄청 많았다. 초등학생부터 시작하여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어른까지 다양했다. 주로 읍내에서 통을 메고 “아이스~케키~”하고 소리치면서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읍내에 장사가 너무 많으니 오늘 우리 시골로 한 번 가보자”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통 가득히 아이스케키를 담고 읍내에서 6km 정도 떨어진 유천면 하지리를 지나 이곳저곳을 다닌 적도 있었다. 읍내에서는 돈을 받고 팔지만, 시골로 가면 마늘, 쌀 등의 농산물과 고무신, 비닐우산 대, 빈 병 등 다양한 것을 물물교환식으로 해서 팔기도 하였다.
그날 기대한 것만큼 팔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예천역을 지나 조금 더 왔을 때, “어이, 아이스케키”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뛰어가 보니 그늘에서 화투 놀이를 하던 어른들이 아이스케키 10개를 달라고 해서 통을 열어보니 너무 많이 녹은 상태였다. 그래서 조금만 기다리시면 제가 뛰어가서 새것으로 바꾸어 오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하였다. 1km 정도 되는 거리를 거의 뛰다시피 하여 제빙점에 도착하여 녹은 것을 반납하고 잘 얼어있는 새 아이스케키를 담아서 다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3분의 2 정도를 갔을 때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가 오니 덥던 날씨가 어느 정도 시원해졌다. 사람들이 기다리던 장소에 도착하니 사람 수가 많이 줄어 있었다. 비가 오니 일부는 집으로 돌아갔고, 남아 있던 사람들도 날이 서늘하니 아이스케키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고 한다. 아이스케키 통을 메고 왕복 2km 가까운 거리를 뛰어서 갔다가 왔는데 안 먹겠다니 얼마나 허탈한가.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어른들이 먹지 않겠다니 어쩌겠는가? 다시 통을 메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찹쌀떡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해야 판매가 시작된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 일찍 저녁을 먹고 장롱이나 책상 서랍을 하나 꺼내어 깨끗한 종이를 깐다. 상자를 들고 떡집에 도착한 후 그날 팔 수 있는 양의 찹쌀떡을 구입하여 서랍 위에 가지런히 담고 그 위를 깨끗한 천으로 덥는다. 그리고는 광목으로 된 양쪽 어깨끈을 이용하여 찹살 떡 상자를 몸 앞에 반듯하게 고정하고 밤거리를 다니면서 장사를 시작한다.
아이스케키는 후불제로 팔다 남은 것을 반납할 수 있지만, 찹쌀떡은 선불제로 반납이 되지 않는다. 그날 가져온 찹쌀떡을 반 팔면 본전이 된다. 더 많이 팔면 이윤이 생기지만 더 적게 팔면 적자를 본다. 팔다 남은 것은 집에 가져와 식구들이 나누어 먹는다. 아이스케키 장사도 많았지만 찹쌀떡 장사도 너무 많았다. 이쪽에서 찹쌀~떡~ 하고 소리치면 저쪽에서도 찹쌀떡~ 하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가 먹고살려고 하는데 어쩌겠는가? 판매량은 들쑥날쑥하지만 보통 저녁 8시 반이나 9시가 넘으면 거의 판매가 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2/3 정도가 팔리는데 가끔은 몽땅 판매한 날도 있다. 이런 날은 기분이 너무 좋아 추운 것도 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