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가 살아온 길

6. 군 복무 (4) – 행정병(서무계)이 되다.

목우자 2024. 8. 15. 18:08

토목공사 현장에서 시작된 군 생활도 3개월 정도 지나니, 제법 익숙하게 삽질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보초를 서고 있는데 중대 본부 막사에 계시던 인사계(중대 선임하사)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밖에 경계병, 황 일병 맞나?”라는 소리가 들렸다. “네 맞습니다. 일병 황무길입니다.” 라고 대답하니 근무 끝나면 중대 본부로 오라고 하셨다.

시간이 되어 후임자에게 인계한 후 중대 본부 막사로 들어갔다. 그때만 하더라도 하늘보다 높은 인사계였다. ‘고향이 어디냐, 대학은 어디를 나왔느냐? 몇 가지 질문이 이어진 후, 군 생활은 할 만한가를 물었다. 매일 삽질하는 생활이 나에게는 무척 힘든 생활이었지만,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부대원 전체가 하는 일인데 그 자리에서 힘들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인사계님은 공사가 끝나고 중대가 복귀하면 중대 본부 서무계 조수로 발탁할 예정이니 그때까지 소대 생활을 잘하라고 하셨다.

그로부터 열흘 정도 지났을 때 공사 현장도 거의 마무리가 되고 파견 나왔던 중대 전체가 대대본부로 돌아왔다.

본부로 돌아온 이튿날 나는 서무계 조수로 보직을 받았다. 중대 본부에는 중대장(대위)과 인사계(상사)가 있고, 병으로는 서무계(중대 행정업무 처리), 이사종계(중대원의 먹거리, 피복, 각종 장비 등 관리), 그리고 공사계(중대가 맡은 각종 공사계획 수립과 추진)가 있었다. 그런데 서무계를 하는 병사가 3개월 후에 제대하기 때문에 미리 후임자를 뽑아 업무를 배우도록 한 것이다.

서무계 조수로 발탁되자 이젠 공사 현장에서 삽을 잡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중대원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똑같은 사병이지만 본부 요원은 뭔가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졸병이 다른 소대에 출입할 때는 소대 입구에서 큰 구호와 함께 거수로 경례해야 하지만 본부 요원은 이를 생략하고 들어가도 시비 거는 사람이 없었다. 본부 요원 중에도 특히 서무계는 병들의 휴가와 외출외박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더욱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서무계 조수가 된 지 2개월 후에 사수가 제대하고 나니 그때부터는 정식 서무계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자대에 배치된 지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병들 중에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남은 군 생활도 큰 불편 없이 잘할 수 있었다.

군이나 사회에서 보직을 받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말하는데 이를 권력이라 생각하고 칼을 휘두르면 거기서부터 부조리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나는 2년 정도 서무계 역할을 하면서 이를 빙자해서 남을 힘들게 한 적은 없었다. 단지 제대할 때까지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힘든 공사 일을 하지 않으면서 군 생활을 잘할 수 있었던 것을 늘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