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가 살아온 길 42

6. 군 복무 (4) – 행정병(서무계)이 되다.

토목공사 현장에서 시작된 군 생활도 3개월 정도 지나니, 제법 익숙하게 삽질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보초를 서고 있는데 중대 본부 막사에 계시던 인사계(중대 선임하사)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밖에 경계병, 황 일병 맞나?”라는 소리가 들렸다. “네 맞습니다. 일병 황무길입니다.” 라고 대답하니 근무 끝나면 중대 본부로 오라고 하셨다.시간이 되어 후임자에게 인계한 후 중대 본부 막사로 들어갔다. 그때만 하더라도 하늘보다 높은 인사계였다. ‘고향이 어디냐, 대학은 어디를 나왔느냐? … 등’ 몇 가지 질문이 이어진 후, 군 생활은 할 만한가를 물었다. 매일 삽질하는 생활이 나에게는 무척 힘든 생활이었지만,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부대원 전체가 하는 일인데 그 자리에서 힘들다..

6. 군 복무 (3) – 삽 3자루

중대 본부에 도착하니 2명의 병사만 보였다. 중대 전체가 공사 현장으로 파견 나가고 지금은 연락병만 남아있다고 한다.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식사를 마치니 부대가 파견 나간 현장으로 이동한다고 하였다. 함께 배치받은 3명이 군용트럭을 타고 출발하였다. 방향은 북쪽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지나온 서울을 다시 통과하여 북쪽으로 한참을 더 가서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려보니 큰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커다란 군용 텐트가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중대 본부에 들어가서 전입 신고를 마치고 1소대에 배치되어 소대 막사로 안내되었다. 부대원들은 모두 공사 현장으로 나갔고, 오늘 전입온 신병은 텅빈 막사에서 저녁 시간까지 휴식을 취하라고 하였다.저녁 때가 되니 소대원들이 모두 돌아왔다. 소대장과 내부반..

6. 군 복무 (2) ○○○보충대

안동에서 밤 열차에 탑승하여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밤새도록 이동하였다. 새벽녘이 되어서 도착한 곳은 의정부역이었다. 거기서 다시 군용 트럭을 타고 잠깐 이동하니 군부대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보충대였다. 보충대는 훈련을 마친 병사들이 근무할 부대로 배치받기 위하여 대기하는 곳이다. 여기서 2박3일을 보냈는데 너무 편안하여 군인들의 지상낙원이라고 하였다. 사역(부대 안에서 잡일을 하는 것)병으로 잠깐 나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영외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였지만, 영내에서는 내무반장을 제외하면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는 완전 자유였다. 사흘째 되던 날, 개인 소지품이 든 더플백을 들고 부대 배치를 받기 위하여 모두가 운동장에 집결하였다. 이곳에서도 ..

6. 군복무 (1) 훈련병

입대하던 날, 남자라면 당연히 거치는 군입대지만 왠지 창설 없는 감옥에 가는 기분이 들었다. 집이 있는 예천 터미널에서 안동 36사단까지는 버스를 타면 한 시간 조금 더 걸리는 곳이다. 혼자 갈 용기가 나지 않아 친구 한 명과 같이 가기로 하였다. 부대 인근에 도착하여 함께 점심을 먹고 입소 시간 가까이 되어서 부대 앞에 도착하니 군인들이 부대 밖으로 나와서 안내하고 있었다. 부대 안으로 들어가면서 배웅나온 친구를 보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손을 흔들어 주는 친구에게 돌아가라는 손짓을 하고 안으로 들어 갔다. 그런데 담 하나 차이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담 밖에서는 친절이 넘치는 목소리로 “장정분들, 어서 안으로 들어 가십시다.”라고 했는데, 담 안으로 들어오니 180도로 바뀌었다. 존댓말은 ..

5. 교직 생활(1) 교사가 되다

1975년 3월 2일 이른 아침을 먹고 집에서 2km가 조금 넘는 예천농업고등학교를 향하여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였다. 학교에 도착하여 교무실에 들어가니 새로 발령받은 선생님들(9명 정도로 기억됨)의 자리가 교감 선생님 책상 부근에 마련되어 있었다. 고향 선배인 선생님들도 보였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옆 반 담임을 하셨던 분도 만날 수 있었다. 신임 선생님들이 모두 도착하자 교장실로 안내되어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차 한잔을 마신 후 다시 교무실로 돌아왔다. 이어서 직원회의가 시작되자 새로 부임한 선생님들 소개와 신학기 업무 분담 발표가 있었다. 나는 7월에 입대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담임에서 제외되었으며, 수업은 1, 2, 3학년 수학을 조금씩 배정받았는데 주당 24시간이었다. 맡은 업무는 교무실..

4. 대학생활 4년 (7) 입주과외 그리고 졸업

충분하지는 못했지만 과외를 통하여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가끔은 부모님으로부터 또는 대구에 근무하고 있었던 둘째 형과 셋째 형으로부터도 용돈을 얻어 쓴 것 같다. 그러다가 4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친구의 소개로 입주 과외를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과 중학교 3학년 여학생 남매가 있는 집인데 학교 후문 부근에 있어서 학교 다니기도 아주 좋았다. 아버지는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작은 공장(주택 마당에 지은 소규모 공장임)을 운영하고 있었다. 혼자 쓸 수 있는 방이 있었으며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얼마간의 수고비도 받았다. 아울러 스스로 해오던 빨래를 직접 하지 않으니 너무 좋았다. 4월부터는 중학교 영어, 과학 선생님과 팀을 만들어 그룹 과외를 하였다. ..

4. 대학 생활 4년 (6) 충실하지 못한 대학 생활

고등학교 시절 내 꿈은 경제학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핑계 같지만, 경제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였다가 궁여지책으로 학비가 저렴한 국립 사범대학에 지원하게 되었다. 수학교육과를 지원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고등학교 수학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교사로 발령받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재미있는 수학을 계속해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1학년은 교양 과목 공부를 하지만 한 학기에 한 과목(3학점)은 전공과목을 이수해야 된다. 1학년에서는 미분․적분학을 수강했는데 고등학교에서 생각했던 수학과는 너무 달랐고 재미도 너무 없었다. 교수님은 교재에 나와 있는 정의(Definition)를 설명하고, 이 정의와 관련된 정리(Theorem)를 증명하는 것이 강의의 전부였다. 가끔은 정리를 활용하..

4. 대학 생활 (5) 담배를 피기 시작하다.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마쳤을 때, 친구들이 당구장을 가보자고 하였다. 난생처음 당구장을 가보니 실내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한쪽 구석에서는 화투나 카드 놀이를, 또 다른 곳에서는 짜장면을 시켜 먹는 모습도 보였다.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시작한 친구의 코치를 받아서 당구공을 쳐보니 공이 제대로 맞지 않았지만, 이외로 재미가 있었다. 이렇게 시작한 당구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친구들과 즐겨하는 놀이가 되었다. 또한 당구를 치는 거의 대다수 사람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고 나도 담배를 피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 한 갑을 사서 불을 붙이고 담배 연기를 들어 마시니 기침만 콜록콜록 났다. 처음 산 담배 한 갑은 일주일 가까이 주머니에 들어있었는데, 차츰 담배가 익숙해지자 2~3일이 지나면 담배 한 갑이..

4. 대학생활 4년 (4) 아르바이트 시작

두 달간의 여름방학을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에서 보내고 8월 말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9월 초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겼다. 여고생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가정을 방문하여 매주 2회 수학 공부를 도와 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기도 했지만 몇 번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할 수가 있었다. 보수는 하숙비를 내고도 조금 남을 정도인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수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단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학생에게 설명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많이 알고만 있다면 저절로 좋은 수업도 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과외를 시작한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형편없는 수업을 하고도 많은 돈을 받았으니 미안하기만 하다. 그렇게 시작한 과외는..

4. 대학생활 4년 (3) 힘들었던 1학년 1학기

5월 28일은 개교기념일이다. 5월 초순 중간고사가 끝나면 그때부터는 개교기념 행사를 준비하느라 학교 전체가 들썩거린다. 특히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체육행사가 으뜸이었다. 체육에는 워낙 소질이 없었던 나는 주로 응원팀으로 함께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개교기념일을 전후해서 감기에 걸렸는데, 일주일이 지났지만, 차도가 없었다. 하숙방에 혼자 남아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기도 하고,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 않아 부모님이 계시는 예천 집으로 왔다. 꿀을 사 와서 뜨거운 물에 타서 먹기도 하였고, 병원 진료도 받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가 힘들면 찾는 동동할매(바가지를 이용하여 귀신을 몰아낸다고 하는 할머니)를 모시고 와서 악귀를 몰아내는 행사까지도 치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