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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이 된 텃밭

발가락 부상으로 바깥출입을 못한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던 발가락 하나 골절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 다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니 ‘발가락이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조금씩 걸어도 된다’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제일 먼저 암진단을 받고 힘들어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발을 다쳐 외출이 안 되니 전화 통화만 하다가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고 조심스럽게 출발하였다. 친구가 있는 실버타운을 방문해 보니 가족도 없이 혼자 투병 생활을 하는 모습이 딱하기만 하였다. 밖으로 나와서 함께 점심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내 나름대로 위로한다고 하였지만 별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친구를 만나고 온 이튿날 집에서 400m 정도 떨어져..

6. 군 복무 (4) – 행정병(서무계)이 되다.

토목공사 현장에서 시작된 군 생활도 3개월 정도 지나니, 제법 익숙하게 삽질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보초를 서고 있는데 중대 본부 막사에 계시던 인사계(중대 선임하사)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밖에 경계병, 황 일병 맞나?”라는 소리가 들렸다. “네 맞습니다. 일병 황무길입니다.” 라고 대답하니 근무 끝나면 중대 본부로 오라고 하셨다.시간이 되어 후임자에게 인계한 후 중대 본부 막사로 들어갔다. 그때만 하더라도 하늘보다 높은 인사계였다. ‘고향이 어디냐, 대학은 어디를 나왔느냐? … 등’ 몇 가지 질문이 이어진 후, 군 생활은 할 만한가를 물었다. 매일 삽질하는 생활이 나에게는 무척 힘든 생활이었지만,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부대원 전체가 하는 일인데 그 자리에서 힘들다..

어느 기자의 재치(예수상 방향)

남미의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이웃한 국가로서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습니다. 두 나라는 똑같이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해야겠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식민지 독립전쟁 과정에서 양국의 독립군을 서로 지원하거나 협공하며 스페인군과 전쟁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두 나라는 동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경을 길게 맞대고 있는 두 나라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자 사막 지대와 섬의 영유권을 두고 국경 분쟁이 일어났으며 그 갈등은 점점 높아졌습니다.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의 수고와 헌신이 이어졌고, 1904년 3월 13일에는 '안데스의 예수님상'이라고 불리는 높이 7m의 청동상을 국경의 우스파야타 고개(해발 3,832m) 에 세웠습니다.이날 양국의 외무..

맨발 걷기(2)

맨발 걷기에 조금 익숙해져서 제법 재미가 붙을 즈음 첫 번째 복병을 만났다. 산길을 오르면서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왼쪽 중간 발가락이 땅에 튀어나온 나뭇등걸에 부딪혔다. 무척 아팠지만 괜찮겠거니 하면서 가던 길을 계속 갔다가 돌아왔다.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며칠 지나면 괜찮을 것 같아서 병원도 가지 않았다.일주일 정도가 더 지난 어느날 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오른쪽 넷째 발가락이 또 부딪치고 말았다. 지난번보다 더 많이 아팠다. 집에 돌아와 볼일을 보려고 구두를 신어보니, 정상적으로 걷기가 불편하였다.점심을 먹고 나서도 통증이 완화되지 않아 가까이 있는 정형외과를 찾았다. X레이 사진을 찍어보니 발가락 등에 뼈가 살짝 갈라졌다고 한다. 발가락에 부목을 하여 고정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3~4..

6. 군 복무 (3) – 삽 3자루

중대 본부에 도착하니 2명의 병사만 보였다. 중대 전체가 공사 현장으로 파견 나가고 지금은 연락병만 남아있다고 한다.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식사를 마치니 부대가 파견 나간 현장으로 이동한다고 하였다. 함께 배치받은 3명이 군용트럭을 타고 출발하였다. 방향은 북쪽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지나온 서울을 다시 통과하여 북쪽으로 한참을 더 가서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려보니 큰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커다란 군용 텐트가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중대 본부에 들어가서 전입 신고를 마치고 1소대에 배치되어 소대 막사로 안내되었다. 부대원들은 모두 공사 현장으로 나갔고, 오늘 전입온 신병은 텅빈 막사에서 저녁 시간까지 휴식을 취하라고 하였다.저녁 때가 되니 소대원들이 모두 돌아왔다. 소대장과 내부반..

맹사성과 나옹선사

어느날 젊은 관리 한 사람이 선지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산속에 있는 암자를 향하여 부지런히 길을 가고 있었다. 암자의 스님은 손님이 올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법당 뜨락을 서성거리고 있었다.드디어 그 관리가 암자에 도착하자, 스님은 예를 갖추며 "빈도는 나옹이라 합니다. 관원께서 어쩐 일로 예까지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다.관리는 "나는 장차 고려국의 대들보가 될 사람이오. 스님의 명성이 자자해서 좌우명 하나 얻으려고 왔습니다."라고 대답한다.그 관리는 명문가 출신으로 젊은 나이에 벌써 유, 불, 선에 통달했다. 게다가 고려국의 군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최영 장군의 손녀와 혼인했으며, 약관에 높은 관직에 올랐으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생봉행(衆生奉..

맨발 걷기(1)

맨발 걷기가 건강에 좋다고 하여 전국적으로 맨발 걷기 열풍이 불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즐겨 찾는 동네 뒷산에도 맨발로 오르는 사람을 오래전부터 볼 수 있었다. 구미시에서는 시민들이 맨발 걷기를 할 수 있도록 기존 흙길을 정비하는 한편 추가로 맨발 길을 조성한 곳도 있다.  오래전부터 나에게 맨발 걷기를 권하는 이웃도 있었지만, 선뜻 내키지를 않아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6월 초에 지인이 맨발 걷기 영상을 보내 주었다. 맨발 걷기는 건강 증진에 많은 도움이 되며, 불면증과 허리 통증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밤잠을 잘 자지 못하고, 허리 협착증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아내, 그리고 당뇨약은 먹지 않지만, 경계선에서 늘 조심하고 있는 나 자신을 위하여 함께 맨발 걷기를 시작하기로..

6. 군 복무 (2) ○○○보충대

안동에서 밤 열차에 탑승하여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밤새도록 이동하였다. 새벽녘이 되어서 도착한 곳은 의정부역이었다. 거기서 다시 군용 트럭을 타고 잠깐 이동하니 군부대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보충대였다. 보충대는 훈련을 마친 병사들이 근무할 부대로 배치받기 위하여 대기하는 곳이다. 여기서 2박3일을 보냈는데 너무 편안하여 군인들의 지상낙원이라고 하였다. 사역(부대 안에서 잡일을 하는 것)병으로 잠깐 나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영외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였지만, 영내에서는 내무반장을 제외하면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는 완전 자유였다. 사흘째 되던 날, 개인 소지품이 든 더플백을 들고 부대 배치를 받기 위하여 모두가 운동장에 집결하였다. 이곳에서도 ..

그 많은 선비는 다 어디로 갔는가?

몇 년 전 외국 자동차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자동차의 배출가스 농도를 속였고, 연비까지 조작한 것이 들통났다. 다른 나라에서는 집단 항의와 자동차 구매 반대 운동을 펼쳤지만 관대한 우리 소비자들은 연비가 좋다는 이유로 변함없이 그 자동차를 구매하였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어떤 명품(?)은 상품값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턱없이 높지만,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22대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어떤 후보자의 말이 바뀌는 것을 순서대로 적어 보면 대충 “나는 아무런 잘못을 한 적이 없다.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하는데 내가 무슨 큰 죄를 저질렀다고 하냐? 검찰이 표적 수사를 하고 있다. 법원이 잘못 판결하고 있다.” 이렇게 변하고 있다. 이분이 정말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법원의 최종 판결은 더디기만 하고, 유..

오늘은 부부의 날입니다

아내와 나는 많은 면에서 서로 다릅니다. 이런 아내를 이해하기보다는 당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으니 당연히 내 뜻에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일은 직장 생활을 하는 나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고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나 봅니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 방식이, 내 사고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살림 살고 아이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집안일도 함께하는 경우가 차츰 많아졌습니다.  퇴직하고 백수 된 지가 벌써 11년째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삼식이가 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우리 부부는 함께 삼식을 하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습니다. 그 삼식 중 아침 식사 한 끼는 내 담당입니다. 아침은 사과 반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