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58

풀밭이 된 텃밭

발가락 부상으로 바깥출입을 못한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던 발가락 하나 골절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 다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니 ‘발가락이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조금씩 걸어도 된다’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제일 먼저 암진단을 받고 힘들어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발을 다쳐 외출이 안 되니 전화 통화만 하다가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고 조심스럽게 출발하였다. 친구가 있는 실버타운을 방문해 보니 가족도 없이 혼자 투병 생활을 하는 모습이 딱하기만 하였다. 밖으로 나와서 함께 점심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내 나름대로 위로한다고 하였지만 별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친구를 만나고 온 이튿날 집에서 400m 정도 떨어져..

맨발 걷기(2)

맨발 걷기에 조금 익숙해져서 제법 재미가 붙을 즈음 첫 번째 복병을 만났다. 산길을 오르면서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왼쪽 중간 발가락이 땅에 튀어나온 나뭇등걸에 부딪혔다. 무척 아팠지만 괜찮겠거니 하면서 가던 길을 계속 갔다가 돌아왔다.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며칠 지나면 괜찮을 것 같아서 병원도 가지 않았다.일주일 정도가 더 지난 어느날 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오른쪽 넷째 발가락이 또 부딪치고 말았다. 지난번보다 더 많이 아팠다. 집에 돌아와 볼일을 보려고 구두를 신어보니, 정상적으로 걷기가 불편하였다.점심을 먹고 나서도 통증이 완화되지 않아 가까이 있는 정형외과를 찾았다. X레이 사진을 찍어보니 발가락 등에 뼈가 살짝 갈라졌다고 한다. 발가락에 부목을 하여 고정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3~4..

맨발 걷기(1)

맨발 걷기가 건강에 좋다고 하여 전국적으로 맨발 걷기 열풍이 불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즐겨 찾는 동네 뒷산에도 맨발로 오르는 사람을 오래전부터 볼 수 있었다. 구미시에서는 시민들이 맨발 걷기를 할 수 있도록 기존 흙길을 정비하는 한편 추가로 맨발 길을 조성한 곳도 있다.  오래전부터 나에게 맨발 걷기를 권하는 이웃도 있었지만, 선뜻 내키지를 않아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6월 초에 지인이 맨발 걷기 영상을 보내 주었다. 맨발 걷기는 건강 증진에 많은 도움이 되며, 불면증과 허리 통증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밤잠을 잘 자지 못하고, 허리 협착증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아내, 그리고 당뇨약은 먹지 않지만, 경계선에서 늘 조심하고 있는 나 자신을 위하여 함께 맨발 걷기를 시작하기로..

그 많은 선비는 다 어디로 갔는가?

몇 년 전 외국 자동차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자동차의 배출가스 농도를 속였고, 연비까지 조작한 것이 들통났다. 다른 나라에서는 집단 항의와 자동차 구매 반대 운동을 펼쳤지만 관대한 우리 소비자들은 연비가 좋다는 이유로 변함없이 그 자동차를 구매하였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어떤 명품(?)은 상품값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턱없이 높지만,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22대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어떤 후보자의 말이 바뀌는 것을 순서대로 적어 보면 대충 “나는 아무런 잘못을 한 적이 없다.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하는데 내가 무슨 큰 죄를 저질렀다고 하냐? 검찰이 표적 수사를 하고 있다. 법원이 잘못 판결하고 있다.” 이렇게 변하고 있다. 이분이 정말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법원의 최종 판결은 더디기만 하고, 유..

오늘은 부부의 날입니다

아내와 나는 많은 면에서 서로 다릅니다. 이런 아내를 이해하기보다는 당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으니 당연히 내 뜻에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일은 직장 생활을 하는 나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고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나 봅니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 방식이, 내 사고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살림 살고 아이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집안일도 함께하는 경우가 차츰 많아졌습니다.  퇴직하고 백수 된 지가 벌써 11년째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삼식이가 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우리 부부는 함께 삼식을 하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습니다. 그 삼식 중 아침 식사 한 끼는 내 담당입니다. 아침은 사과 반 개..

오늘은 어버이날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나의 어버이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나의 자식들이 나를 어버이로 섬기는 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헸듯이 나의 두 딸도 우리 마음을 헤아리기 힘들겠지요.평소 좋아하는 시인 심순덕님의 시(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편을 적어봅니다.-----------------------------------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하루 종일 밭에서죽어라 힘들게 일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식구..

능력 위주의 사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사흘간의 황금연휴가 이어지는데 첫날부터 비가 내려 어린이들이 크게 실망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 측면에서 보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날이기도 하지만, 어른의 측면에서 보면 미래 사회의 주역 어린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관심을 환기하고, 관련 정책들이 잘 정비되고 추진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어린이였던 6~70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어린이를 위한 여러 정책이 너무나 잘 세워져 있고, 실제로 추진도 잘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혜택을 받을 어린이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아이가 줄어드니 산부인과가 없어지고, 소아과병원도 문을 닫고 있습니다. 아기를 안아야 할 가슴 앞에 강아지가, 아기가 타야 할..

22대 국회의원 선거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민주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나는 선거 운동 기간 너무 답답하였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온통 상대방 물어뜯는 것이 선거 운동의 전부인 것 같았다.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비전은 보이지 않고, 오직 상대방의 결점만 물고 늘어지는 이전투구의 모습은 많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내가 20대 시절이던 50년 전 결혼 상대자의 모습을 보자. 신부가 갖추어야 할 첫째 조건은 현모양처의 품성이었다. 신랑이 갖추어야 할 첫째 조건은 가족 부양을 할 수 있는 능력(뚜렷한 직장 등)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 외모나 성격, 가족 관계 등을 살펴보는 것이 순서였다.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은 상대방이 내 마음에 와닿는가 아닌가가 먼저인 것 같다. 즉 필이 통하여야 한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

2012년 수안보에 퇴직 연수를 받으러 갔었다. 연수가 끝나갈 무렵 분임활동을 함께 했던 분들이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하니 이별주나 한잔하자’라면서 맥줏집에 모였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한 분이 “우리 이렇게 헤어지지 말고 퇴직 후에도 정기적으로 만나면 좋겠다”라고 제안했고 참석자 모두가 동의하였다. 그 자리에서 회비 50,000원씩을 거두었고, 퇴직 후인 내년에 이곳 수안보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였다. 모두가 공무원이란 공통점이 있었지만, 근무처와 거주지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이 구성되었다. 이듬해 9월 수안보에서 다시 모였는데, 10명(남 6명, 여 4명)이 참석을 하였다. 함께 점심을 먹고 세 가지(2014년부터 분기별로 연 4회 만남. 매월 5만 원 회비 납부. 모임을 주관하는 사람이 계획..

설날

어릴 때 그토록 기다렸던 설날이 지나간 지도 열흘이 지났다. 가난하던 시절, 운이 좋으면 새 옷도 한 벌 입을 수 있는 날이 바로 설이다. 모두가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으면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그런데 실제로 나의 관심은 차례나 세배가 아니라 세뱃돈이다. 공식적인 용돈이 없던 시절 설날이라도 되어야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나만의 용돈이 생기니 어찌 기다려지지 않았겠는가? 성장하여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아랫세대에게 세뱃돈을 주는 처지로 바뀌었다. 우리 형제들이 8남매니 조카들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학생 이상, 중고등학생, 초등학생으로 구분하여 세뱃돈을 주었었다. 세배가 끝나면 약간의 상품을 걸어놓고 윷놀이가 시작된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나면 각자 집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