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설날

목우자 2024. 2. 20. 16:47

어릴 때 그토록 기다렸던 설날이 지나간 지도 열흘이 지났다.

가난하던 시절, 운이 좋으면 새 옷도 한 벌 입을 수 있는 날이 바로 설이다. 모두가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으면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그런데 실제로 나의 관심은 차례나 세배가 아니라 세뱃돈이다. 공식적인 용돈이 없던 시절 설날이라도 되어야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나만의 용돈이 생기니 어찌 기다려지지 않았겠는가?

 

성장하여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아랫세대에게 세뱃돈을 주는 처지로 바뀌었다. 우리 형제들이 8남매니 조카들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학생 이상, 중고등학생, 초등학생으로 구분하여 세뱃돈을 주었었다. 세배가 끝나면 약간의 상품을 걸어놓고 윷놀이가 시작된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명절 제사를 없애자는 안이 나와서 몇 년 전부터는 이런 모임도 없어지고 말았다. 제사 음식을 장만하지 않아도 되고, 번거롭게 먼 길을 오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해졌는가? 물리적으로는 많이 편해졌지만 귀찮은 가운데도 알게 모르게 전해지던 끈끈한 정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면도 있다.

 

이번 설은 아내와 단둘이 보냈었다. 늘 시간에 쫓기는 서울 큰딸에게 다음 주에 우리가 올라가니 내려오지 말고 시댁 다녀와서 푹 쉬라고 했다. 작은딸은 바다 건너 있으니 오고 싶어도 쉽게 올 수가 없다. 4월에 다니러 온다고 했으니 그때 보면 되겠지.

 

찾아오는 손님도 없으니 아침 식사도 평소와 같이 먹었다. 사과 반쪽, 채소 샐러드에 달걀 한 개 반, 그리고 견과류 조금이다. 아침을 먹고 아내와 마주 섰다. 맞절하면서 옆에 있어 주어서 고마워요. 우리 아프지 말고 오랫동안 함께합시다.’라고 빌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내에게 세뱃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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