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가 살아온 길 42

4. 대학생활 (2) 하숙생

하숙 생활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아침과 저녁은 정해진 시간에 모여 함께 식사한다. 그런데 늘 반찬이 부족한 편이다. 밥을 먹는 속도가 조금 느린 나는 가끔은 반찬이 부족한 상황에서 남은 밥을 먹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밥을 먹을 때, 공용 반찬을 먼저 먹고 국과 같은 개인용 반찬은 제일 마지막에 먹는 것이다. 그러면 반찬이 다 떨어져도 남은 밥은 국과 함께 먹으면 된다. 한 달 정도가 되었을 때, 하숙집 왕고참이 전 하숙생이 참가하는 회식 기회를 만들었다. 약간의 회비를 내고 함께 술 한잔하면서 노래도 불렀다. 그는 앞으로도 매월 한 번 이런 기회를 만들자고 제안하였고 모든 하숙생이 동의하여 거의 매월 하숙생 단합대회가 치러지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3년간 똑같이 수학을 좋아했고..

4. 대학 생활 (1) 대학생이 되다

1971년 3월 1일 대망의 꿈을 안고 예천에서 대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을 떠난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어렵게 마련해 주신 돈 2만 원을 안 주머니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한 달 하숙비 7,500원, 교복과 교재 구매비, 그리고 한 달 생활비를 포함한 것이다. 대구역에 내려 경북대학교 정문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본 적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20분 조금 더 걸리는 거리인데도 약간의 차멀미를 하였다. 학교 정문 앞에서 내려 짐보따리를 들고 미리 구해둔 하숙집을 찾아갔다. 앞으로 이곳이 대학 생활에서 나의 안식처 역할을 해줄 곳이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래도 문리대 수학과에 입학한 친구와 같은 하숙방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많은 위안이 되었다..

3. 고등학교 시절 (5) 대학 진학을 못한다

(5) 대학 진학을 못 한다.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있지 않아 대학입학예비고사(1970학년도부터 대학 입학 본고사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기 위해 국가에서 시행한 시험. 예비고사에 합격해야 대학에서 실시하는 본고사에 응시할 수 있다. 1981년에 폐지되었다) 원서를 내었다.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응시생 모두가 전세 버스를 타고 시험장이 설치된 대구까지 가야 했다. 시험 하루 전날 새벽에 출발하여 시험장이 있는 학교에 가서 응시표를 받고 미리 정해 놓은 여관에서 하룻밤을 잔다. 그 이튿날 시험을 치고 밤늦게 예천까지 돌아오는 일정이다. 저녁에 우리가 묶고 있는 여관으로 셋째 형(형은 육군 부사관으로 50사단에 근무 중이었음)이 찾아왔다. 숙소에서 가까운 동대구역 공사 현장을 구경 갔는데 감탄을 금할 ..

3. 고등학교 시절 (4) 목표대학 변경

2학년 2학기가 되었을 때 서울대학을 꿈꾸는 친구들이 서너 명 있었다. 서울대학에 입학하려면 제2외국어를 독일어로 선택해야 한다. 일본 동경대학이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서울대학교도 일본어를 제2외국어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독일어 선생님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우리에게 무료 과외를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일주일에 한두 번 선생님 자취방을 찾아가 두어 달 동안 독일어 과외를 받기도 하였다. 3학년이 되었다. 그때는 사립학교 선생님도 학원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나도 친구들과 함께 영어와 수학 두 과목은 얼마간 학원 강의를 듣기도 하였지만 크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제일 힘든 과목이 국어와 영어였지만 도움받을 곳이 마땅치 않아..

3. 고등학교 시절 (3) 검정고시

(3) 검정고시 응시 2학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갑자기 학교생활이 시들해졌다. 시골 사립학교 여건이 모두 비슷하겠지만, 학교 수업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 같다. 나와 생각이 같은 친구 몇 명이 모여 "우리 검정고시 치러 가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재학생은 검정고시 응시를 할 수 없다. 검정고시는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하지 못한 어려운 사람들에게 학업 기회를 주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는 전산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재학생이 응시하더라도 본인이 밝히지 않으면 찾아낼 방법이 없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잘못된 생각으로 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학교 몰래 응시 원서를 제출하고 시험에 응시했지만 모두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결론은 "그래도 학교..

3. 고등학교 시절 (2) 고교 1학년

(2) 고등학교 1학년 입학식을 하고 본격적인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여서 학교 다니기는 너무 좋았다. 어쩌다가 늦은 날은 조금 뛰어가면 지각하지 않게 도착한다. 같은 반에 3년, 2년, 1년씩 늦은 친구들이 있어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나름 재미있는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원래 소질이 없어서 그런지 국어와 영어 과목에서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1학년 수업은 그런대로 할만했다. 2학기가 시작될 무렵 학원에 근무하시던 수학 선생님이 새로 오셔서 2, 3학년 수업을 담당하셨는데 인기가 너무 좋은 것 같았다. 10월경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1학년 과정으로 수학 경시대회를 열었는데 나는 3등을 하였다. 역시 수학은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고 실제로 잘했던 것 같다. 1..

3. 고등학교 시절 (1) 다시 학교에 가다

(1) 다시 학교에 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4년이 되었다. 이제 집안 형편도 조금 나아졌고, 4년간 직장 생활하면서 받은 월급을 적은 돈이지만 어머니께서 별도로 모아 놓으신 것 같았다. 부모님과 형들이 상의하여 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 예천에 있는 대창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입학시험은 필기시험과 체육 시험으로 나누어진다. 오전에 필기시험이 끝나고, 오후에 체육 시험이었다. 달리기와 턱거리도 시험 종목인데 평소에 1개를 겨우 하던 턱걸이를 그날 3개나 하였다. 며칠 후 합격자 발표 공고에 내 이름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과정을 밟지 않은 나보다 공부를 더 못한 학생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니던 공민학교는 2학년에서 수료하고, 4년간의 직장 생활도 마감하였다. 그리..

2. 점원과 급사시절 (9) 중졸자격 검정고시 합격

(9) 중학교 졸업 자격 검정고시 합격 2학년 10월 무렵이 되었을 때, 검정고시 공고문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함께 공부하던 5명이 출제 경향도 파악할 겸 미리 응시를 한번 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져 검정고시 응시 원서를 제출하였다. 12월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안동농고에서 9개 과목을 시험을 치렀는데, 그때 날씨가 얼마나 추웠는지 손발이 꽁꽁 얼 정도였다. 예천에서 난방 시설도 없는 첫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1시간 반 정도 걸려서 안동 터미널에 도착한다. 학교까지 걸어가서 시험을 치고 돌아오는 과정이 이틀간 반복되었다. 시험 후 운이 좋으면 몇 개 과목 합격하여 3학년 졸업할 때 부담을 줄일 수 있겠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시험이 끝나자 검정고시는 잊고, 직장 생활과 학교를 열심히 다녔다...

2. 점원과 급사시절 (8) 한약으로 맹장염을 치료

(8) 한약으로 맹장염을 치료하다. 고등공민학교 1학년 과정을 마치고 2월초 봄방학 기간이었다.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한 홍보 활동에 함께 가자는 연락을 받았다. 서무실에서 일하는 분과 학생 여러 명이 신입생 모집 벽보와 풀이든 통을 들고 예천 읍내를 돌며 벽보 붙이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아랫배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였다. 괜찮겠거니 하면서 기다렸지만, 통증이 멈추지 않고 조금씩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도저히 더 참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 벽보 붙이는 작업을 친구들에게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함께 병원으로 가서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단 결과 맹장염이 틀림없으니 수술해야 한다고 한다. 일단 통증을 줄여주는 진통제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 예천 인근 도시인 영주에 맹장..

2. 점원과 급사시절 (7) 고등공민학교 입학

(7) 고등공민학교 입학 이듬해 2월 초에 예천교회에서 신성고등공민학교를 야간 과정으로 개교한다고 하였다. 중학교는 알겠는데 고등공민학교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예천교회 원서접수처에 가서 자세히 알아보니, 정식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는데 현직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봉사활동으로 수업을 해주신다고 하였다. 야간에 수업하므로 정식 중학교보다는 과목별 수업 시간이 적지만 3년 과정을 마치면 검정고시 9과목 중 몇 개 과목(4 또는 5과목?)을 면제해 준다고 한다. 면제된 과목은 제외하고 나머지 과목만 시험을 쳐서 60점 이상을 취득하면 중학교 졸업 자격을 부여한다고 하였다. 야학에서 공부하던 50여 명이 공민학교에 입학하였다. 교실이 없었기 때문에 교회 부설 유치원 교실을 1년 동안 사용하였고, 2학년 때는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