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가 살아온 길 42

1. 초등학교 시절 (12) 감자, 고구마 이삭줍기

(12) 감자, 고구마 이삭줍기 내가 어릴 때는 취사와 난방을 위한 땔감도 중요한 해결 과제였다. 아직 연탄이 일반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된 연료는 나무였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주변 산에서는 땔감이 될만한 나무를 구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나무를 구하러 가시는데 편도 4~8km를 걸어가서 나무를 해 오신다. 아버지가 오실 시간에 맞추어 큰형 또는 둘째 형이 마중을 나가서 아버지 대신 지게를 지고 돌아오는 일도 많았다. 셋째 형과 나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나뭇짐을 지고 올 수는 없지만, 별도로 하는 일이 있었다. 여름철엔 감자 이삭줍기, 가을에는 고구마 이삭줍기다. 감자보다는 고구마 이삭줍기를 많이 했다. 형과 나는 자루와 호미를 하나씩 들고 3~4km 정도 떨어진 고구마밭을 찾아 나선다. ..

1. 초등학교 시절 (11) 아카시아-진달래꽃

(11) 아카시아꽃과 진달래꽃 어린 시절에는 늘 배가 고팠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먹어야 했다. 산에 가서 칡뿌리를 캐서 깨끗이 씻은 다음 씹어먹으면 단물이 나온다. 어린 소나무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은 벗겨내고 속껍질을 껌 씹듯이 먹기도 하였다. 봄이면 아카시아꽃이나 진달래꽃으로 배를 채우기도 하였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런 것을 먹지 못하게 하려고 ‘아카시아꽃을 많이 먹으면 몸속에 뱀이 생긴다. 진달래꽃을 따 먹으러 산속으로 들어가면 나병환자가 병을 고치기 위해 아이들을 잡아간다.’라는 말도 하였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많이도 따먹었다.

1. 초등학교 시절 (10) 약주 막지와 옥수수죽

(10) 약주 막지와 옥수수죽 부잣집이 아니고서는 끼니마다 밥을 먹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끼니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양조장에 가서 약주 막지(술을 걸러내고 남은 찌꺼기)를 무료로 얻어와서 당원(단맛을 내는 알약 비슷한 것)을 넣고 끓여서 먹으면 허기는 면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약주 막지에는 알코올 기운이 조금 남아 있어서 몸에 술기운이 돌기도 하였다. 가끔은 밀기울(밀가루를 만들고 남은 밀 껍질인데 약간의 가루가 남아 있음)을 싼값에 구매하여 반죽하여 쪄서 먹기도 하였다. 가까이 있는 예천교회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큰 가마솥에 옥수수죽을 끓여서 점심으로 먹을 수 있도록 나누어 주었다. 11시 30분 무렵이 되면 커다란 빈 그릇을 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죽이 다 되기를 기다린다. 가끔은..

1. 초등학교 시절 (9) 가짜 꿀과 보리죽

(9) 가짜 꿀과 보리죽 밑 동네로 이사를 한 후에도 어머니의 막걸리 장사는 계속되었는데, 이곳에서는 밀주를 담그지 않고 양조장 막걸리를 배달시켜 팔았다. 우리 집 가까이에 나무전 골목이 있어서 장날이 되면 엄청나게 장사가 잘되었다. 이 시기에 어머니는 메밀묵을 해서 함께 팔기도 하였다. 어느 해 여름 막걸리 장사가 잘되지 않아 열 식구의 생계가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어머니께서 탄광지역으로 꿀 장사를 나가셨다. 설탕으로 만든 가짜 꿀을 싼값에 구매하여 경북 예천에서 영주를 거쳐 강원도 영월 또는 도계지역까지 가신다. 예천에서 영주까지 가신 다음 영주에서 다시 열차를 바꿔 타야 한다. 차비를 아끼고자 영주에서 목적지가 아닌 가까운 역까지 차표를 끊는다. 역무원이 차표 검사를 할 때가 되면 ..

1. 초등학교 시절 (8) 막걸리 배달

(8) 막걸리 배달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 것 같다. 우리 집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산 밑에 학교 운동장이 있다. 학교에서는 운동장을 넓히려고 수개월에 걸쳐 언덕에 있는 바위 폭파 작업을 하였다. 작업을 하는 인부들의 새참 시간에는 막걸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막걸리 배달처가 바로 우리 집이었다. 주전자에 술을 담아서 김치와 함께 가져가는데, 가끔은 내가 배달하였다. 배달 도중에 아무 일이 없었는데도 술을 가져가면 어른들은 “너 오다가 술 마시고 물 부어서 왔지?”하고 말한다. 나는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너무 억울하여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는데 내가 철이 들어 다시 생각해보니 그분들이 정말로 나를 의심한 것이 아니고 골려주려고 그랬는 것 같다.

1. 초등학교 시절 (7) 어린 시절 놀이

(7) 어린 시절 놀이 내가 어린 시절에 우리 집에는 장난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놀이는 많았다. 주로 단체 놀이인데 제기차기, 병뚜껑을 이용한 땅따먹기 놀이, 자치기, 깡통 차기(술래가 눈을 감고 열을 셀 동안 모두 흩어져서 보이지 않는 곳에 숨는다. 술래가 숨은 사람을 찾아 나선다. 술래가 숨은 사람을 찾으면 깡통이 있는 곳에 도착하여 먼저 깡통을 발로 차야 이긴다. 숨은 사람이 술래 몰래 와서 깡통을 차거나, 발견되었더라도 술래보다 먼저 도착하여 깡통을 차면 술래가 패한다) 등을 많이 했다. 그리고 나무로 칼을 만들어 이웃 동네 아이들과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심하지는 않지만 다치는 아이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어쩌다 동네에서 돼지를 잡으면 ..

1. 초등학교 시절 (6) 참외 농사를 지어 외가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6) 참외 농사를 지어서 외가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어릴 때 우리 집은 늘 가난의 연속이었지만 집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외가는 그런대로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여름이면 참외와 수박이 나오고, 가을에는 고구마도 수확하기 때문에 늘 먹을 것이 많았다. 어린 나는 참외 농사를 짓기 때문에‘외’자가 붙어서 외가인 줄 알았는데 어머니의 친정집이 외가라는 것을 제대로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설날이 되면 아이들은 많은 세뱃돈을 기대하고 있지만 부모님이 주는 세뱃돈은 너무 적었다. 그래서 설날 차례와 세배가 끝나면 우리 형제들은 한 시간 정도를 걸어서 외가까지 세배를 가곤 하였다. 명분은 웃어른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세뱃돈을 받기 위하여 왕복 두 시간 걷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

1. 초등학교 시절 (5) 문중 묘사

(5) 문중 묘사 예천 지역 창원 황가는 매년 문중 산소에서 묘사(조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하는데, 주로 음역 10월에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를 가리킨다.)를 2곳에서 날짜를 달리하여 지낸다. 이날 오전에는 집안의 어른들이 산소에 모여 제사를 올린다. 이것이 끝나면 제실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제사를 지낸 각종 음식을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남김없이 골고루 나누어 준다. 워낙 먹을 것이 없는 시절이기 때문에 이날 거의 모든 학생은 2~3교시를 마치면 조퇴한다. 그리고는 점심시간에 맞춰 집에 있는 어린 아기까지 업고 제실로 모인다. 점심도 한 끼 먹을 수 있고, 점심 후에는 참석한 사람 숫자에 맞춰 분배해둔 제사 음식을 받아 가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동이 가능한 사람은 총출동하는데 우리..

1. 초등학교 시절 (4) 전학

(4) 전학 처음 살던 집과 이사한 집 사이에는 조그마한 개울이 있고 개울을 따라 도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살던 집은 학군이 예천서부초등학교였고 이사한 집은 예천동부초등학교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서부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했는데 형들을 따라 동부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3학년이 되었을 때, 학군 정리를 한다고 서부초등학교로 전학해야 한다고 하였다. 5월로 기억이 되는데 나무 그늘에서 야외 수업 도중 담임선생님께서 전학갈 사람 나오라고 해서 전학 기념으로 노래를 한 곡 하라고 하신다. 나는 노래를 엄청 못했지만 ‘산골짝에 다람쥐’라는 노래를 부르고 그 이튿날 선생님의 인솔하에 단체로 서부초등학교로 전학을 간 것 같다. 전학 이후에 이사를 해서 다시 학군이 동부학교로 바뀌었지만 전학 없이 서부..

1. 초등학교 시절 (3) 밀주 판매

(3) 밀주 판매 아버지는 특별한 직업이 없으셨고 가끔 노동 현장에서 일용직 일을 하신 것 같다. 어머니는 집에서 막걸리 장사를 하셨는데 고정된 일이 없으신 아버지가 많이 도와 주셨다. 그 당시 막걸리는 양조장에서 가져와 팔아야 하지만 어머니는 이문이 적은 양조장 술은 조금만 가져오고 직접 막걸리를 제조(그 당시는 밀주라고 하였으며 세무서에서 이를 단속하던 시절임)하여 판매하셨다. 이에 따라 많은 수난을 당한 일들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 막걸리를 담기 위해서는 누룩이 있어야 한다. 통밀을 적당히 빻아서 메주 만들 듯이 만들어 방안에 일정 기간 걸어두면 마르면서 누룩곰팡이가 피게 된다. - 쌀로 고두밥을 만들어 멍석 위에 넓게 펴서 따뜻한 기운이 없어질 때까지 식힌다. 그 당시 쥐가 많았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