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이 세상을 떠난 큰형수님(1)

목우자 2023. 12. 15. 20:16

새로 태어난 외손녀 돌보는 일을 끝내고 35일 만에 미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1016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큰사위 덕분에 서울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구미로 내려왔다.

한 달 반 정도 집을 비웠더니 집안이 먼지투성이다. 베란다에 모아둔 화분이 시든 것도 있고 마른 것도 눈에 뜨인다. 지인에게 물을 부탁하고 갔지만 아무래도 주인이 집을 비우니 화분도 낯설 이를 한 것 같다. 자동차는 방전되어 차 문도 열리지 않는다. 보험회사에 긴급 출동을 요청하여 시동을 걸고 아쉬운 대로 당장 필요한 몇 가지 식재료도 준비하였다.

 

미국에 가 있는 동안 가장 신경 쓰였던 일은 암 투병 중인 큰 형수 일이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미국에 있을 때 큰일이 발생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지 사흘째 되는 날 4형제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계시는 큰 형수 문병하러 갔다. 병원에 도착하여 간호하는 큰형에게 전화를 드리니 처음에는 그냥 돌아가라고 하셨지만,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그냥 돌아가느냐고하니 어쩔 수 없이 병실까지 안내해 주셨다.

병실에 도착해 보니 산소마스크를 쓰고 계시는 형수님의 모습은 보기가 너무 딱하여 나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였다. 형수님의 손을 잡고 형수님하고 불러 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는 듯하였다. 잠시 면회를 마치고 방을 나서니 큰형 말씀이 보듬실이라고 쓰여있는 이 방이 바로 임종실이라고 하였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자녀들(딸 둘과 아들)을 모두 불러놓은 상황이었다. 임종이 가까웠다는 뜻이다. 병문안이 아니라 임종을 지켜보고 나온 셈이었다.

 

우리 형제들이 병실을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녀들이 도착하였다. 식구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아들이 엄마를 부르면서 손을 잡자 의식이 없는 형수님은 눈물을 흘리더니 곧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일 년 반 정도 암과의 싸움을 벌였지만 결국 형수님은 암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증상을 일찍 발견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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