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다름은 없고 내편, 네편만 있는 나라

목우자 2022. 12. 11. 11:37

미국에 사는 둘째 딸이 잠시 다니러 집에 와있다. 임신 5개월째인데 휴식을 취할 겸 해서 먼저 들어오고 사위는 2주 정도 뒤에 귀국하여 1월 중순 무렵에 함께 돌아갈 예정이다.

나는 매일 TV조선 9시 뉴스를 즐겨본다. 보수 편향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MBCKBS 뉴스를 보기 싫은 탓도 있다.

그저께 저녁 뉴스를 볼 시간이었지만 아내와 딸이 오은영 박사가 나오는 금쪽같은 내 새끼프로를 흥미 있게 보고 있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보던 프로가 끝나는 920분쯤에 TV조선으로 채널을 돌렸다.

그러자 함께 있던 딸이 왜 하필 TV조선을 보느냐?”고 말했다. 사실을 왜곡하여 편파방송을 하는 TV조선을 보는 아버지가 무척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이것이 발단되어 한참 동안 보수와 진보 논쟁(?)이 일어났다.

내 기억에 딸의 나이가 서른여덟 살이 되도록 크게 다투어 본 적은 없다. 아버지로서 딸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적도 없고, 딸도 부모에게 불합리한 요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정치 이야기가 나오니 이렇게도 편이 완전히 갈라지고 만다. 나와 아내는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의 민주당이 잘못하고 있다고 하면, 딸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나와 딸이 서른네 살 차이가 나니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 부모 세대는 지독한 가난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가 최우선 과제였다. 그러나 딸의 세대는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 세상을 살았기 때문에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는 딸을 이해할 수 없고, 딸도 부모를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른 집도 똑같은 실정이다. 이런 세대 간의 다른 가치관을 대화를 통하여 이해하려는 노력은 없고 옳다. 그르다.’로만 구분하니 다툴 수밖에 없다. 조금 더 계속하면 싸움이 날 것 같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두기도 뭣하다.

사람들은 하고많은 것 중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는 경향이 있고,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다르므로 다른 해석을 낳을 수도 있다. 보수와 진보로 편이 두 쪽으로 완전히 갈라져서 내 편 아니면 적으로 돌리는 이런 현실이 너무 슬프기만 하다.

또한 이런 상황을 조장하는 것이 정치인들이다. 말로는 나라를 위한다는 그들이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이나 당의 이익만 챙기려고 하고 있기에 이런 현상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네가 틀렸고 내가 옳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싸움만 일어난다. ‘옳다. 그르다’로 판단하여 편을 가르려 하지 말고 상대방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공통점도 찾을 수 있고 지금보다는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선에서 논쟁은 대충 끝났다.

크든 작든 한 조직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그중에서 한 가지를 말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이 조직의 공동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특히 나라의 지도자는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제각기 다른 가치관과 다른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편으로 갈라서는 안 된다. 대화와 타협으로 함께 손잡고 갈 수 있도록 구심점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를 못한 것 같다. 전임 대통령이나 현 대통령 모두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한 개인의 언행이 모두 옳다거나 모두 잘못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통령이나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를 보고 모두 잘했다거나 모두 못했다고 평을 해서는 안 된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잘못한 것은 잘못한 대로 구분하여 각각 공정한 평가를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권이 바뀌면 모두가 점령군처럼 전임 정부가 하던 것은 깡그리 부숴버리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다. 잘못한 것은 새로 시작하되 잘한 것들은 계승하여 더 발전시키겠다고 하면 격이 떨어질까?

정권이 바뀐다는 의미는 전임 정부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다면 새 정부가 무슨 의미와 희망이 있겠는가?

이런 와중에도 내 편, 네 편으로 구분하지 않고 냉정히 살피고 살펴 공동체를 잘 이끌 지도자를 뽑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장래는 밝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