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모음

거인의 마음(우암 송시열 선생 일화)

목우자 2023. 7. 24. 19:48

어느 늦가을, 날이 저물어 갈 무렵 나이 지긋한 선비가 하인이 모는 노새를 타고 주막집을 들어섰다. 선비의 차림은 검소했으며, 먼 길을 온 듯 퍽 피곤해 보였다. 선비는 주막집에서 가장 깨끗한 방을 빌려 피곤한 몸을 뉘었다. 어렴풋이 잠이 들 무렵 주막 앞이 떠들썩해지더니, “충청 수사 행차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충청 수사는 충청도 지방의 바다를 지키는 해군 대장을 말한다.

주막집 주인은 허둥지둥 달려 나가 일행을 맞이하였다. 관리 한 사람이 주인에게 가장 좋은 방으로 수사를 모시도록 명령하였다. 주인이 더듬거리며 그 방에는 벌써 다른 손님이 들어있다.”라고 말하자 관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수사님의 행차이신데 손님은 무슨 손님이냐? 잔말 말고 어서 그 방을 비워라.”

 

결국 선비가 들었던 방에는 수사가 들었고, 나머지 방들은 모두 관리들이 차지했다. 선비는 할 수 없이 관리들이 든 방의 구석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그러나 선비의 얼굴에서는 노여운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선비는 바로 효종 임금의 부름을 받고 이조판서에 부임하기 위해 한양으로 가고 있었던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이었다. 우암 유고집에는 그때의 일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선생이 끝까지 자기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조용히 그날 밤을 보냈던 것은 아래 사람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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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配慮)짝 배’, ‘생각할 여이다. 다시 말해서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한다는 뜻이다.

상대방을 위하여 시간과 돈을 써가면서 최선을 다했는데, 그는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상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내 관점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배려는 상대방 입장에 서서 그가 어떤 상황에 있으며,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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