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다시 찾아온 어지러움

목우자 2023. 2. 14. 18:08

어지러움이 시작되고 며칠 지나니 거의 증상이 없어져서 이젠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7일째 되던 일요일 아침에 잠을 깨니 지난번 증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가만히 있어도 어지러움을 느끼고 움직이면 증상이 더 심했다. 괜찮은 것 같아서 파크골프도 치고 그저께는 술도 몇 잔 먹었는데 방심이 화를 키운 것 같다.

 

하필이면 오늘이 일요일이니 병원 갈 수도 없다. 그냥 하루를 견뎌야 한다. 구미에서 어지러움을 잘 보는 병원이 있는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시내에 있는 하나이비인후과가 소개되어 있었다. 종합병원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차병원 예약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이비인후과는 한 달을 기다려야 예약할 수 있는 날짜가 나온다. 혹시라도 뇌에 이상이 있나 싶어 신경과를 들어가 보니 어지러움을 담당하는 의사가 내일 오후에 진료할 수 있는 것으로 나와 바로 예약신청을 했다.

 

이튿날(월요일) 오전에 아내와 함께 하나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달팽이관에 이상이 있는지 검사하는 비용이 7만 원이라고 한다. 두꺼운 안경 같을 것을 끼고 눈동자를 점에 고정했다가, 좌우로 움직여도 보고, 고개도 돌려보고 하면서 검사를 마치고 담당 의사를 만나니 약간의 이석 현상이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물리치료를 받고 주사도 한 대 맞으라고 한다. 물리치료는 의외로 간단하였다. 고개를 살짝 돌려 왼쪽으로 누웠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눕고 엎드려서 턱을 늘어뜨리는 것이 전부였다.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겼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약국에 들러 처방한 약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니 증상이 어느 정도 사라진 것 같아 마음도 조금 안정이 되었다. 휴식을 취하고 시간이 되어 차병원을 갔다. 담당 교수께 증상을 말씀드리니 앞으로, 뒤로, 그리고 눈 감고 걸어 보라고 한다. 그렇게 하고 나니 뇌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병원에 갈 때는 이 기회에 뇌 사진도 찍어보려 했지만, 담당 의사는 많은 돈을 들여서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다고 진단을 내리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면서 책상 앞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다른 사람 모두 아파도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나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움직이지 못할 수도, 말을 못 할 수도, 먹지 못할 수도, 보지 못할 수도,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좋은 물건을 다음에 쓰려고 아껴두고, 당장 해야 할 일들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미루어 두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젠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이 시기에 어지러운 증상이 나를 찾아온 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미루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다음에를 찾지 말고 오늘, 지금 생각날 때 바로 해야 할 것 같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바로 전화해서 약속하고,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당장 출발하고, 좋은 물건 있으면 아끼지 말고 지금 바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 아픔에 감사하라라는 말의 의미가 이제야 조금 이해되는 것 같다. 큰 고장 나기 전에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잘 감지하여 몸을 돌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 별일 없으니 내일도 별일 없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고, 오늘 살아 있다고 내일도 살아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매일 매일을 최선을 다하여 가치 있게 보내라는 의미가 함께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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