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초등 시절 에피소드를 끝내며
무척 힘든 시기였지만, 그 당시는 온 세상이 가난하였기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학교에서 주는 찐 우유나 옥수수빵도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8남매가 둥근 상(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작은 크기이지만 그때는 너무 큰 상이었다고 생각했음)에 옹기종기 앉아 식사하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재미(?)있지 않은가?
쌀알보다는 보리알이 더 많은 밥에 반찬이라고는 채소와 된장찌개뿐이었지만 8남매가 함께 먹으니 너무 맛이 있었다. 그때 먹던 보리밥, 채소, 된장찌개는 요즈음 모두 건강식품에 해당한다.
우리가 먹는 밥은 큰 그릇에 함께 담았지만, 아버지 밥은 1인용 밥그릇에 별도로 담는다. 아버지 밥그릇에는 우리가 먹는 밥보다 하얀 쌀알이 더 많아 보였다. 어머니께서는 밥을 담을 때, 아버지 밥을 먼저 푸고 당신과 자식들이 먹는 밥은 한데 섞어서 푸기 때문에 쌀알이 섞인 비율 차이가 났다. 가장에 대한 어머니의 배려였을 것이다. 가끔은 아버지가 남겨주시는 밥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형제간에 경쟁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기다리고 있는 자식들을 위하여 식사 때마다 일정량을 남겨주신 것 같다.
지금은 별식으로 갱시기(찬밥, 콩나물, 신 김치, 파, 간장, 소금 등 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죽처럼 끓여서 만든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대표적인 구황음식)를 만들어 먹지만, 먹을 것이 귀했던 옛날에는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준 음식이다.
한 개뿐인 야외 화장실을 우리 열 식구와 수많은 막걸리 손님들이 함께 사용했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껏해야 서너 명이 사는 아파트에 화장실이 한 개 있으면 불편하다고 두 개씩이나 만들어 놓았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친구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옛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그래도 60이 넘은 분들은 “그 시대가 그랬지!” 하면서 고개를 끄떡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부모님이 물러준 재산이 없었기에 서로 많이 가져가려고 형제간에 다투는 일은 없었다. 한참 전에 종교 때문에 형제간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각자의 종교를 존중해주고 서로 조금씩 양보해준 덕분에 자주 만나고 우애도 좋은 편이다.
부모님이 물려줄 재산이 없다는 것이 자식들의 삶에 좋은 영향도 미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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