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 앞 도로(우리 집은 마당이 거의 없으므로 집 앞에 있는 도로가 마당 역할을 했음)에서 친구와 구슬치기를 하고 있던 1964년 2월 28일 오후였다. 저 멀리서 오시는 분이 6학년 담임 선생님같이 보였다.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실 일이 없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설마 했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이 틀림없는 담임 선생님이었다.
가지고 있던 구슬을 얼른 안주머니(당시 내복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에 많이 해진 바지는 안에 입고, 덜 해진 바지는 밖에 입는다. 안에 입은 바치는 절로 내복이 된다)에 넣고 하늘 같은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이 “아버지 집에 계시지?”하고 물으셨다. “예”라고 대답하고는 선생님을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안내해 드렸다.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아버지와 이야기를 끝내신 선생님이 나오셨다.
선생님은 “무길아, 아버지와 이야기되었으니 가자”라고 말씀하시면서 앞장을 서신다. 영문도 모르고 선생님을 따라가니 ‘영우사’라는 상점(전기 관련 용품과 라디오 판매 및 수리, 흑백 사진 인화를 하는 곳이었음)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상점 주인과 미리 이야기되었는지 “내일부터 여기 나와서 일해라.”라고 하시면서 주인아저씨에게 나를 소개해 주셨다.
담임 선생님은 중학교 진학을 못 한 나를 딱하게 여기시어 라디오 판매 및 수리하는 상점에 취직시켜 주신 것이다. 기술을 배워서 생계를 꾸려가라는 뜻이었다.
영우사 진열장 앞에서 주인 아저씨가 찍어서 인하해준 사진. 입고 있는 옷은 형이 입던 중학교 교복인데 군데군데 낡은 표시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