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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와 여유(버나드 쇼)

저명한 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가 쓴 극본 이 연극으로 만들어져 공연할 때 일화입니다. 공연이 끝나자, 관람했던 관객들이 크게 환호하며 조지 버나드 쇼를 무대 위로 오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관객 중 한 사람이 무대에 오른 그를 보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봐! 쇼. 당신 극본은 정말 못 봐주겠군. 누가 이런 엉터리 공연을 보겠어요? 당장 집어치워요!” 환호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습니다. 모든 관중이 숨을 죽이고 쇼와 그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었습니다. 쇼가 이 남자에게 어떻게 반응할지를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쇼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예, 참 잘 보셨습니다. 당신 말이 맞아요. 정말 형편없는 극본이죠. 그런데 우리 둘이 반대한들 이 많..

세월 앞에 장사 없다.

그 무덥던 여름 열기도 이젠 한풀 꺾인 것 같습니다. 낮에는 무덥지만, 아침저녁엔 제법 서늘합니다. 여름 무더위가 아무리 악을 써도 밀쳐오는 가을 기운은 당할 수가 없나 봅니다. 온 세상이 기상이변이라고 아우성을 쳐도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2012년 수안보에 퇴직 연수를 가서 같은 분임조 활동을 했던 분 중 여섯 명이 부부 동반으로 매년 3회씩 1박2일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회원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 보니 이동 거리가 멀어서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반면에 주관하는 회원이 본인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안내를 맡아주니 관광도 하고 맛있는 향토 음식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동안 만남이 뜸했지만 10년째 만나다 보니 이젠 정이 많이 들었고 모임에 대한 애착도 대단한 편입니다. 그런데..

내가 먼저 손을 내밀자

여행을 떠난 세 친구가 한방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몹시 코를 골았습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코를 고는 소리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고 했고, 두 사람은 너무 잘 잤다고 합니다. 코를 고는 사람은 누우면 바로 잠이 드는 스타일이니 잘 잘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옆에서 코를 골지만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잠을 잘 잤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좀 예민한 사람으로 코를 고는 소리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한 것이지요. 옆에서 코를 골았지만, 그 영향은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잠을 자지 못한 원인은 코 고는 소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책..

‘무엇’보다 ‘어떻게’ 말하는가가 중요하다.

옛날 어느 왕이 자신의 이가 모조리 빠지는 꿈을 꾸었다. 왕은 기분이 좋지 못하여 신하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였다. 신하들은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 아무도 꿈을 풀이하려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이름난 해몽가를 불러 꿈을 풀어 보기로 하였다. 얼마 후 한 해몽가가 왕의 꿈 이야기를 듣고는 이렇게 풀이하였다. “전하! 흉조입니다. 전하의 가족들 모두가 전하보다 먼저 세상을 뜨실 징조입니다.” 이 해몽을 둘은 왕은 크게 화를 내면서 즉시 그를 감옥에 감금하였다. 이때 다른 해몽가가 앞으로 나서며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전하! 정말 좋은 징조입니다. 전하의 가족들 가운데 전하께서 가장 오래 사신다는 뜻입니다.” 왕은 매우 기뻐하며 이 해몽가에게 많은 상금을 내렸다. 궁을 벗어난 신하들이 두 번째 해몽가에게 물었..

3. 고등학교 시절 (6) 경북사대 수학교육과 합격

대학교 진학을 할 수 없다고 하니 무의미한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다. 예비고사에 합격한 친구들은 대학 간다고 정신없이 공부하지만, 나를 포함한 그 외 학생들은 아무 생각 없이 학교를 다니는 것 같았다. 대학 입학원서 접수 마감이 임박한 어느 날, 제대 직전 휴가를 나온 둘째 형이 “학비가 저렴한 국립 사범대에 진학하면 힘들지만, 대학을 다닐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제안하여 경북대 사대 수학교육과에 원서를 내보기로 하였다. 원서를 작성할 즈음 수학 선생님께서 부르시더니만 “황군, 학교 수학 선생을 하려면 대학 가지 않고 지금 실력으로도 충분하네. 수학과를 졸업하고 꼭 경제학을 공부하게나. 그렇게 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꼭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경제학을 다시 공부하지는 못했..

카테고리 없음 2023.08.07

어디 가슴 뻥 뚫리도록 시원한 곳 없나요?

스스로 힘으로 나라를 지키지도 못하여 36년 동안 일제 식민지 생활을 했다. 해방되어 나라의 기틀을 잡아가는가 싶었는데 공산 침략으로 전 국토가 폐허가 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났을 당시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지만, 7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자”라고 외치면서 피땀 흘려 노력한 세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식들에게는 더 이상 가난을 물러주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든 것을 참아가면서 오로지 일만 한 세대였다. 남을 원망할 시간도, 잘 났다고 싸울 시간도,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이 오로지 일만 하며 평생을 보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노력도 해보지 않고 풍요로운 사회를 물려받은 사람들이 큰소..

거인의 마음(우암 송시열 선생 일화)

어느 늦가을, 날이 저물어 갈 무렵 나이 지긋한 선비가 하인이 모는 노새를 타고 주막집을 들어섰다. 선비의 차림은 검소했으며, 먼 길을 온 듯 퍽 피곤해 보였다. 선비는 주막집에서 가장 깨끗한 방을 빌려 피곤한 몸을 뉘었다. 어렴풋이 잠이 들 무렵 주막 앞이 떠들썩해지더니, “충청 수사 행차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충청 수사는 충청도 지방의 바다를 지키는 해군 대장을 말한다. 주막집 주인은 허둥지둥 달려 나가 일행을 맞이하였다. 관리 한 사람이 주인에게 가장 좋은 방으로 수사를 모시도록 명령하였다. 주인이 더듬거리며 “그 방에는 벌써 다른 손님이 들어있다.”라고 말하자 관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수사님의 행차이신데 손님은 무슨 손님이냐? 잔말 말고 어서 그 방을 비워라.” 결국 선비가 들었던 방..

3. 고등학교 시절 (5) 대학 진학을 못한다

(5) 대학 진학을 못 한다.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있지 않아 대학입학예비고사(1970학년도부터 대학 입학 본고사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기 위해 국가에서 시행한 시험. 예비고사에 합격해야 대학에서 실시하는 본고사에 응시할 수 있다. 1981년에 폐지되었다) 원서를 내었다.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응시생 모두가 전세 버스를 타고 시험장이 설치된 대구까지 가야 했다. 시험 하루 전날 새벽에 출발하여 시험장이 있는 학교에 가서 응시표를 받고 미리 정해 놓은 여관에서 하룻밤을 잔다. 그 이튿날 시험을 치고 밤늦게 예천까지 돌아오는 일정이다. 저녁에 우리가 묶고 있는 여관으로 셋째 형(형은 육군 부사관으로 50사단에 근무 중이었음)이 찾아왔다. 숙소에서 가까운 동대구역 공사 현장을 구경 갔는데 감탄을 금할 ..

둘이라서 외롭지 않다

둘이라서 외롭지 않다 아스팔트 도로 위로 작은 씨앗 하나 날아와 틈새에 떨어졌다. 바로 뒤가 기름진 땅인데 그곳은 싫다 하고 하필이면 이곳을 택했을까? 비좁은 틈새지만 터전을 마련하니 햇볕도 쫴주고 비도 내려준다. 혼자 있는 것이 애처롭게 보였던지 친구 하나 찾아와서 이웃해주고 있다. 너무나 척박하여 살기 힘든 곳이지만 이젠 둘이라서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젊은 마부와 노인

어느 추운 겨울밤, 한 노인이 길가에서 추위에 떨며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마차가 다가왔으나 노인은 마차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곧이어 다른 마차가 다가왔지만 역시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세 번째 마차가 다가왔습니다. 노인은 마차를 세우며 말했습니다. “젊은이, 미안하지만 나를 좀 태워 줄 수 있겠소? 눈이 많이 내려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구려.” 마차를 몰던 청년은 친절하게 노인을 태워 주었습니다. 얼마쯤 가서 노인이 마차에서 내릴 때가 되자 청년이 물었습니다. “어르신, 저보다 앞서가던 마차도 있었는데 왜 그 마부에게는 도움을 청하지 않으셨습니까?” 노인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의 눈을 봤다오. 그들은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 보였는데, 당신의 눈에서는 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