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조합으로 옮겨 한 달 근무하고 첫 월급으로 1,200원을 받았다. 점원 월급 500원에서 무려 140% 인상되었다. 꼭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심부름으로 군청, 경찰서, 우체국, 농협 등 여러 기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영우사에 근무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만 보냈었다. 그런데 공공기관을 드나들면서 직위가 낮은 사람은 나이에 관계없이 상급자를 깍듯이 모시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공부하지 않으면 평생 머리를 숙이면서 살아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기 싫던 공부가 하고 싶었고, 교복을 입고 중학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미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 고향 예천은 시골이라 정규학교 외에는 공부할 곳이 없었다.
지극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해 9월 예천경찰서에서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한 청소년들을 위하여 야학을 개설하였다. 극장을 하다가 잘되지 않아 비워둔 큰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에 100여 명이 공부한다고 모였다. 나이는 그해 1월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부터 20살이 넘는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은 경찰관과 대학을 졸업한 지역 유지들이었다. 국어, 영어, 사회, 과학, 한문 5과목을 체계도 없이 수업했던 것 같다.
날이 추워지자 난로를 설치해 주었다. 문제는 설치된 난로에 넣을 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요일이 되면 큰 수레를 끌고 먼 산까지 나무를 구하러 다녔다. 땔감을 구해와서 일주일 정도 난로를 피우고 또 나무를 구하러 가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