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모음

구정선사

목우자 2023. 3. 23. 13:20

서산대사가 금강산 유점사에 있을 때, 그 절에는 김 서방이란 부목이 있었습니다. 부목이란 땔나무를 해 오고 물을 길어 나르는 등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입니다.

김 서방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괴롭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늘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제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는 바보같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서산대사가 김 서방에게내일 우리 절에 법회가 있으니 대중들이 점심 공양을 할 수 있도록 가장 큰 가마솥을 저쪽 뜰에 걸어놓고 나에게 알리라고 했습니다.

김 서방은 즐겁게 달려 나가 금방 가마솥을 걸어놓고 대사께 아뢰었습니다. 서산대사는 몸소 와 보시고는 잘못됐으니 다시 해라고 했습니다.

,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김 서방은 솥의 수평이 잘 못 된 것 같아 이를 바로잡고 다시 아뢰었습니다.

대사께서 와 보시고는 미련한 놈. 아직도 잘못됐어. 다시 해봐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 큰스님.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김 서방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솥의 아궁이가 좁은 것 같아 이를 넓혀 놓고 다시 아뢰었습니다.

대사께서 다시 와 보시고는 , 개만도 못한 밥 도둑놈아. 이걸 솥이라고 걸어놓은 거야. 다시 옳게 걸어놔라고 더 크게 호통을 칩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김 서방은 , 다시 하겠습니다. 큰 스님하고는 다시 솥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솥을 다시 걸기를 여덟 번이나 했습니다. 아홉 번째 지적을 받은 김 서방은 여전히 환하게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솥을 걸려고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등 뒤에서 구정선사(九鼎禪師)께서는 뛰어가지 마시고 그 자리에 좌정해 주십시오라는 서산대사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김 서방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서산대사의 앉으라는 손짓에 따라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김 서방 앞에 다가온 서산대사는 정중하게 큰 절을 3번 올리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대께서는 오늘 아홉 구()  솥 () 구정선사가 되셨습니다. 제가 까닭 없이 온갖 욕설까지 하면서 아홉 번이나 솥을 다시 고쳐 놓으라고 했지만, 선사께서는 얼굴 빛깔 하나 변치 않고 미소 지은 얼굴로 솥을 손보셨습니다. 그대의 그 인내심, 그 참을성이 당신을 선사의 자리에 오르게 했습니다. 내일부터 구정 선사께서 유점사를 맡아 주시고 소승은 묘향산으로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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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즐겁고 행복할 때도 있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참고 견디면 반드시 진실은 밝혀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을 참지 못하고 격분하게 되면 필시 큰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오해로 인하여 힘들고, 어려운 순간일수록 평상심을 가져야 합니다. 구정선사는 되지 못하더라도 3번만 참고 견딜 수 있다면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일수록 크게 숨 한번 쉬고, 한걸음 물러서서, 자신과 주변 상황을 바라본다면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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