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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점원과 급사 시절 (3)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우다

(3)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우다. 이튿날인 3월 1일부터 점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린 나이에 낯선 곳에서 생활하려니 어색하기만 했다. 주인아저씨는 먼저 두 가지를 익히라고 하였다. 한 가지는 진열된 물품의 용도와 판매 가격을 익히는 일이었다. 또 한 가지는 심부름 다닐 수 있도록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가게 안에서 물건들을 익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자전거 타는 것이 문제였다. 우선 자전거 핸들을 두 손으로 잡고 끌고 다니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다음은 끌고 가다가 한 발을 페달 위에 얹어서 가는 것이다. 몇 번 넘어지기도 했지만 제법 익숙해지자 두 발을 모두 얹고 안장에 앉는 연습을 했는데 다리가 짧아서 두 발이 모두 페달에 닿을 수가 없었다. 수없이 넘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겨..

인사말의 변천

내가 어렸을 때(60년대 초)는 주위에 하루 세끼 밥을 먹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만큼 온 세상이 가난에 시달리던 시대였다. 그 당시 끼니때에 사람을 만나면 “식사하셨습니까”가 주된 인사말이었다. 8.15해방 후 치안 부재 때에 좌익, 우익 갈림길에서 상대방을 살상하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하자 “밤새 안녕하십니까”가 아침 인사말이 되었다. 6.25가 발생하자 미국에서 구호품이 들어오고 일부 구장, 반장이 주민에게 나눠줘야할 구호품을 시장에 팔아 재미를 보았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면 “재미 좋아”란 말이 나오게 되었을 것이다. 5.16이 일어나자 군인이 경찰서장을 하고, 도지사가 되었다. 군 관련 일만 하던 사람이 일반 행정 관련 업무를 결재하자니 손끝이 떨린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고(手苦)하십..

잡동사니 2023.03.16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오랜만에 비가 내립니다. 날이 너무 가물어서 냇물도 마르고, 저수지도 마르고, 산과 들도 목이 탄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는데 이렇게라도 비가 내려주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만큼 충분히 내려주면 좋을 텐데 하늘은 그렇게 하기 싫은가 봅니다. 오늘 구미지역 강수량은 겨우 6mm랍니다. 오전까지만 해도 초여름 같았는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오니 다시 겨울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네는 한파주의보가 내린 곳도 많이 있습니다. 봄이 왔는가 싶었는데, 다시 찬바람이 불어와 몸을 움츠리게 합니다. 이렇게 날씨가 변덕스러워도 자연은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고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자신의 할 일을 어김없이 하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파란 새싹이 돋아나고 꽃을 피웁니다.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변..

2. 점원과 급사 시절 (2) 점원이 되다.

(2) 점원이 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 앞 도로(우리 집은 마당이 거의 없으므로 집 앞에 있는 도로가 마당 역할을 했음)에서 친구와 구슬치기를 하고 있던 1964년 2월 28일 오후였다. 저 멀리서 오시는 분이 6학년 담임 선생님같이 보였다.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실 일이 없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설마 했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이 틀림없는 담임 선생님이었다. 가지고 있던 구슬을 얼른 안주머니(당시 내복을 사 입을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에 많이 해진 바지는 안에 입고, 덜 해진 바지는 밖에 입는다. 안에 입은 바치는 절로 내복이 된다)에 넣고 하늘 같은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이 “아버지 집에 계시지?”하고 물으셨다. “예”라고 대답하고는 선생님을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안내해 드렸다. 밖에..

2. 점원과 급사 시절(1) 중학교 진학을 못 하다

(1) 중학교 진학을 못 하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공부 실력은 중간(?) 정도인 것으로 짐작된다. 6학년 때는 공부를 조금 더 잘했는지 2학기 반 대항 학력고사에 우리 반 대표 5명에 뽑혀서 출전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시절 나의 간절한 바람은 상점의 점원이 되는 것이었다. 공부를 안 해도 되고, 손님이 없어서 한가한 시간에는 졸기도 하는 점원들의 모습이 너무 부러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주지역과 희망에 따라 초등학교 졸업생 모두가 중학교에 배정된다. 그러나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입학시험을 쳐서 합격해야 입학할 수 있고,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초등학교 6학년 2학기가 되면 중학교 입학시험 예정자를 파악하는데 나는 당연히 진학하는 것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막상..

희망

오늘은 전국 모든 학교가 신입생 입학식을 하고, 새로운 학년으로 진급한 학생들이 새학기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새 학기를 시작하는 학생 여러분께‘희망’을 가지라는 부탁을 합니다. ***********************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한비야 씨가 아프리카에서 구호 활동을 할 때 일입니다. 한정된 구호자금 때문에 한 마을은 파종할 씨앗을 주었으나 그 옆 마을은 주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해에 비가 오지 않아 파종한 씨앗은 전연 싹을 틔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추수기가 다가왔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씨앗을 주지 않은 마을에서는 먹지 못하여 죽은 사람이 여러 명 나왔으나, 씨앗을 나누어준 마을에서는 굶어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똑같이 비가 오지 않았고 똑같이 한 톨의 수확..

1. 초등학교 시절 (16) 초등시절 에피소드를 끝내며

(16) 초등 시절 에피소드를 끝내며 무척 힘든 시기였지만, 그 당시는 온 세상이 가난하였기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학교에서 주는 찐 우유나 옥수수빵도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8남매가 둥근 상(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작은 크기이지만 그때는 너무 큰 상이었다고 생각했음)에 옹기종기 앉아 식사하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재미(?)있지 않은가? 쌀알보다는 보리알이 더 많은 밥에 반찬이라고는 채소와 된장찌개뿐이었지만 8남매가 함께 먹으니 너무 맛이 있었다. 그때 먹던 보리밥, 채소, 된장찌개는 요즈음 모두 건강식품에 해당한다. 우리가 먹는 밥은 큰 그릇에 함께 담았지만, 아버지 밥은 1인용 밥그릇에 별도로 담는다. 아버지 밥그릇에는 우리가 먹는 밥보다 하얀..

1. 초등학교 시절 (15) 눈감고 안 봤어요.

(15) 눈 감고 안 봤어요. 초등학교 시절 특별히 친한 친구가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처음 살던 집(대창중․고등학교 바로 밑)과 가까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는 옵셋 인쇄를 하고 있었다. 또 한 명은 아버지가 극장 바로 앞에서 과일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집을 비울 때는 친구가 가게를 보곤 하였다. 어느 날 과일 가게를 하는 친구가 “내가 극장 입장권을 마련할 테니 세 명이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라고 하였다. 약속한 날짜 저녁에 친구 과일 가게 앞에서 만나 미리 사놓은 입장권을 들고 세 사람이 함께 들어가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 제목은 ‘아낌없이 주련다’로 기억하고 있다. 너무 오래되어서 영화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당시 영화로는 파격적인 장면이 있었다. 남녀가 비키니 차림으로 해..

1. 초등학교 시절 (14) 물고기 잡이

(14) 물고기 잡이 내가 어린 시절에는 오염물질이 없어서 냇가에 물고기도 많았다. 둘째 형이 피라미 낚시를 잘하여 가끔 물고기를 잡아 오곤 하였다. 나와 셋째 형은 주로 어항이나 줄낚시(여울목 양쪽에 막대를 꽂고 낚싯바늘이 물에 살짝 담길 정도의 높이로 낚싯줄을 설치한다. 물고기가 물면 들어가서 낚싯줄에 걸린 피라미를 따면 된다)를 이용하여 피라미를 잡았다. 한 번은 읍에서 3km 정도 되는 용산리 냇가로 갔다. 큰 물줄기에서 갈라진 작은 물줄기를 어렵게 막고 물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물이 줄어들기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피라미가 튀어 오른다. 물이 거의 없어지면 피라미는 수두룩하고 작은 돌 밑에 숨어있는 미꾸라지, 꾸구리, 텅어리 등의 물고기를 건져 통에 담기가 바쁠 지경이었다. 잡은 물고기들은 더위에 ..

1. 초등학교 시절 (13) 아이스케키, 찹살떡 장사

(13) 아이스케키, 찹쌀떡 장사 셋째 형과 내가 함께한 또 다른 일이 있다. 여름이면 아이스케키(ice cake의 비표준어 : 우유에 설탕, 팥, 달걀, 향료 따위를 섞어 액체로 만든 재료에 나무막대기를 꽂아서 얼린 얼음과자) 팔기, 겨울 저녁에는 찹쌀떡 팔기이다. 제빙공장에서 판매하는 얼음과자는 두 종류가 있었다. 한 가지는 아이스케키인데 요즈음 판매되고 있는 ‘비비빅’과 모양이 비슷하며 많은 사람이 즐겨 먹었다. 다른 한 가지는 아이스캔디인데 요즈음 판매되고 있는 엑설런트와 흡사하다. 한 개씩 종이 포장되어 있으며 그 당시 가격은 2원~3원 정도로 고급 제품에 해당한다. 물론 두 가지 모두 맛과 질은 요즈음 판매되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 형제가 판매한 것은 아이스케키인데 한 개에 1원으로..